주의: 이 글에는 아오야마 케이의 만화 스트로보라이트에 대한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트로보라이트에서 언급되는, 사람의 가치라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와는 관계 없다1, 라는 주장. 이것은, 어쩌면 아오야마 케이가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주장하던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재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갈 가치가 있다, 라는 주장.

만화의 주인공 하마자키 타다시(浜崎正), 그리고 그의 옛 기억이 재구성되어 이루어진 소설 속의 주인공 타다시.그 두 명의 주인공에 아오야마 케이 자신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좀 더 인물들을 상징적으로 해석해 보면, 마치다 미카(町田ミカ)는 현실로 존재하는 만화가라는 직업, 혹은 그에 대한 이상, 더 나아가 만화가로서의 삶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반해 타다시가 마치다 미카에 덧칠한 키리시마 스미레(霧島すみれ)는 마치다 미카가 상징하는 것에 덧대어지는 환상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만화가라는 직업에 대한 환상. 그리고 그러한 삶에 대한 욕망. 한편 만화의 구도상, 미카의 대칭축에 서게 되는 인물은 타다시를 짝사랑하는 여고생 미와코(美和子). 미카의 상징성과 대조해 보면 미와코가 의미하는 것은 만화가가 아닌 평범한 직업, 만화가가 아닌 삶과 같은 모노톤적인 것이 된다. 만화가라는 직업의 특수성을 고려해 볼 때, 평범하게 현실에 순응하는 삶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만화가라는 이상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을 방해하는 현실의 수많은 장애물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징성에 대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만화에서 미와코는 타다시를 집요하게 따라다니고, 그의 내밀한 공간을 허락도 없이 침범하고, 미카와 타다시의 관계가 붕괴하는 결정적인 원인2을 제공하기까지 한다3. 이와 같은 미와코의 스토커적 기질은, 만화가라는 꿈으로서의 미카- 그것이 현실이든 환상이든간에- 를 좇는 아오야마 케이를 괴롭히는 현실적인 장애물들을 상징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최종장에서 타다시가 미와코와 결혼하려는 의지를 내비치는 것은, 곧 만화가로서의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순응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4.

다만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타다시는 미카와 헤어진 이후에도 계속해서 소설을 썼고, 문예지에 기고까지 하게 된다5. 이를 아오야마 케이에 대입해 본다면, 아오야마 케이가 만화가라는 직업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났음6에도 불구하고, 이미 자신의 단행본을 여럿 출간할 정도의 만화가가 되어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어떤 직업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계속해서 그 직업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결국 어떤 직업에 대한 환상, 그리고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현실, 그 양쪽의 중간지점에서 서로와 타협했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타다시가 소설 빼면 시체7인 것처럼, 아오야마 케이도 만화 그리는 것밖에는 모르는 사람이었으며, 만화가라는 직업에 대한 환상이 깨어진 이후 자신이 꿈꾸는 모습의 만화가가 아닌 현실에 순응하는 존재로서의 만화가로 데뷔한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우연히 연재를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단행본을 내게 되고, 하지만 평단의 관심을 두려워하는 상태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8. 그 무렵부터 미와코와 제대로 사귀기 시작한다는 것 역시, 만화가로서 어느 정도의 입지를 다진 시점에서 현실에 순응하게 되었다, 라고 해석할 수 있다.

7년 후 미카와 재회한 타다시는, 미와코와 결혼하려고 한다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사람의 가치라는 것은 재능과 관계없이 존재한다는 말에 대해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도 말한다9. 위에서 가정한 상징을 따라 해석한다면 바로 이 순간이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이것은 아오야마 케이가 자신의 이상으로 존재하는 만화가를 떠올리며 독백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 아오야마 케이는 자신은 현실에 순응하려 한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만화를 그리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고 독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주장하는 것이다. 비록 그렇게 되더라도, 나의 가치라는 것은 만화가로서의 재능과 관계없이 존재한다, 즉 나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라고.

어쩌면 아오야마 케이는, 역시 그건 아니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째서 내가 그의 죽음과, 위의 해석에서 엿볼 수 있는 자신의 재능 없음에 대한 자기혐오, 그리고 현실과 타협하는 결말에서 뿜어져 나오는 암울함에 이토록 관심을 보이는가. 그것은, 사실 위와 같은 해석을 통해서 나 자신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도 마찬가지로 재능과 관계없는 나 자신의 가치라는 것을 찾아 헤메야만 하는 처지에 처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결말에서, 아오야마 케이의 방에 선 나의 그림자를 보는 것이다.

나는 미와코를 내버리고 미카에게 달려가고 있다. 내게 재능이 있든 없든, 미카로서의 미카는 나를 받아들여 줄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나는 나 자신을 인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바라보는 미카는 스미레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 내가 노트북 앞에서 고개 숙이고10, 나와는 달리 너무나도 찬란하게 빛나는 스미레로서의 미카를 바라볼 때, 내가 과연 그것을 견딜 수 있을지, 나로서는 아무래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글쓴이의 덧말: 위 글은, 2012년 2월 3일 새벽 트위터에 올린 여러 개의 트윗을 편집해서 쓴 글이다. 스트로보라이트의 작가 아오야마 케이는 2011년 10월 9일, 자택의 욕조에서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그의 마지막 트윗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작가 생명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면, 그것을 죽임으로써, 도대체 <나>는 무엇을 얻을 생각인 것인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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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오야마 케이, 스트로보라이트, 181페이지 [Back]
  2. 미와코는 타다시에게 미카와 마츠나가 신지의 만남에 대해 언급한다. 이는 타다시와 미카의 대면, 나아가 타다시와 스미레의 대면으로 이어지고, 타다시가 사랑하는 사람이 미카가 아닌 스미레라는 것을 미카와 타다시가 깨닫게 되는 것으로 귀결된다. 아오야마 케이, 스트로보라이트 162페이지. [Back]
  3. 다만, 미와코의 집요한 행동들이 과연 실제로 일어났던 일인가? 혹은 타다시가 소설을 쓰며 장치로서 넣어둔 허구인가? 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특히 미와코가 타다시의 방에 침입해서 Q9을 보게 되는 장면(아오야마 케이, 스트로보라이트, 72-96페이지)은 허구일 가능성이 다분한데, 이는 "본인이 직접 알려주었다"라는 것 자체가 허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타다시의 실제 경험에 기반한 것인 만큼, 미와코의 성격 혹은 그녀가 실제로 했을 행동이 소설에서 묘사되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Back]
  4. 아시는 분은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나는 의도적으로 스트로보라이트라는 작품을 작가 아오야마 케이의 자살과 연관시켜 생각해보고 있는 것이다. 그의 돌연한 자살에 대한 실마리가 이 작품의 기저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해보고 있는 것이다. [Back]
  5. 아오야마 케이, 스트로보라이트, 208-209 페이지 [Back]
  6. 미카와의 결별 [Back]
  7. 아오야마 케이, 스트로보라이트, 160페이지 [Back]
  8. 208페이지에서, 타다시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문학적 해석을 쑥스러워한다 [Back]
  9. 아오야마 케이, 스트로보라이트, 232-235 페이지 [Back]
  10. 아오야마 케이, 스트로보라이트, 150 페이지 [Back]
  11. 作家生命というものがあるとして、それを殺すことで、一?<私>は何を得るつもりなのだろうか [Back]
2012/02/03 17:43 2012/02/03 17:43
Tumnaselda .

건슬링거 걸 12권

2010/10/26 00:32 / 만화
스포일러 만빵.





- 크리스티아노!

- 이제 마지막으로 치닫기 시작하는 듯, 지금까지 윤곽만 보여주던 클로체 사건의 전말을
12권의 절반을 할애해서 보여주고 있다.

- 죠제, 이대로 전국의 병원을 다 돌 셈이냐?

- 그런 의미에서 1권에서 선물한 일기장이 다시 나올 것이 불보듯 뻔하게 보인다. 무서운 작가...

- 헨리에타와 리코라. 원래 헨리에타가 사쿠라, 안젤리카가 토모요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 뜬금없이 등장한 쟈코모의 비중이 대단하다.
클로체 사건의 장본인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뜬금없는데. 아이다 유 답지 않군.

- 엔리카의 환상은 쟈코모가 눈앞에 나타나면서 점점 더 강렬해지는 듯. 약이라도 하냐?

- 잠수함이라니...

- 작가가 영화적 연출을 의도하고 있다는 게 이제서야 눈에 보인다. 영화적 연출이라. 하지만 애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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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6 00:32 2010/10/26 00:32
Tumnaselda .

건슬링거 걸 11권

2010/06/16 15:38 / 만화
사용자 삽입 이미지
10권에서 트리엘라 파트까지 끝나고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했던 만큼 이번 권은 급전개 일색.

건슬링거 걸 11권
표지 장/리코 속표지 베아트리체
59화 기억의 감옥<헨리에타>
60화 벤데타(3)
61화 벤데타(4)
62화 벤데타(5)<트리엘라>
63화 베아트리체<베아트리체>
64화 '패자'의 전장<페트르슈카>
65화 어서 와, 엔리카
66화 청색의 왕자
"드디어 쟈코모의 그림자를 밟는 위치까지 왔다. 기필코 숨통을 끊어놓자. 죠제."

이야기 요약(스포일러)


이야기 부분에도 섞어서 썼지만 감상만 몇줄 써 보자면.(여기도 스포일러 만발)

일단 헨리에타가 안습이다.
대증요법 받았다가 트라우마 재발해서 임무도 수행 못하고 죠제도 지키지 못했으니
작전 끝나고 문제시되는 건 둘째치고 자괴감에 빠져서 망가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트리엘라는 10권에서 각오한 대로 필사적인데 역시 건슬링거걸의 진히로인다운 액션과 감정을 보여준다.
리코는 그냥 도구로 취급되고 화풀이 대상이 되고.
비체와 실비아는 얼마 출연하지도 못했는데 사망.
어느 정도 담당관과의 관계가 묘사되었기 때문에 더욱 감정을 이입할 수 있었다.
페트르슈카야 뭐 잘 놀고 있고...

65화, 66화에서는 쟈코모에 대한 클로체 형제의 증오, 그 중심에 있는 두 인물을 다루고 있다.
11권 표지를 잘 보면 쟝의 등 뒤에 두 명의 실루엣이 존재한다.
하나는 여동생 엔리카, 다른 하나는 쟝의 약혼자 소피아이다.
그 두 명을 클로체 사건에서 한 번에 잃었으니 증오를 안 할 수가 없다.
다만 아버지 클로체와의 관계가 별로 안 좋았던 것 같아서 증오관계가 약간 뒤틀려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아버지가 그 사건을 맡지만 않았더라면" 같은 것이라든지.

의체를 막 죽여나가는 걸 보면 얼마 안 가 끝날 것 같기는 한데 쟝과 죠제의 "이유"를 다시 설명하는 걸 보면
앞으로 또 의외의 전개가 진행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여튼 1권을 읽었을 때는 예상하지도 못했던 깊은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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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체는 쿨시크하게 묘사되어서 은근히 인기가 있었다. [Back]
  2. 솔직히 예상할 수 있는 트랩이었다고 생각한다. 하다못해 돌입 전에 수류탄 하나만 던졌더라도... [Back]
2010/06/16 15:38 2010/06/16 15:38
Tumnaselda .

아 10권의 포스가 너무 강해서 포스팅할 수밖에 없다.

각 권 분석

인물별 분석


끙... 힘들어서 여기까지만.

보멸 볼수록 이 만화는 전체적인 흐름이 무척 정교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예술적인 에피소드 배치, 각 캐릭터들의 이야기 속에서 천천히 진행되는 하나의 중심 서사,
독자가 쉽게 깨닫도록 배치해 놓은 여러 복선들, 미묘한 완급 조절...
히로인으로 아동/청소년을 다루고 있고 덕심에 충실한 gun porn인 데다가 가학적인 비극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무척 매니악해져서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정도로 정교하게 이야기를 그려낼 수 있는 작가는 많지 않다고 본다.

결말은 14권 정도에서 나지 않을까 생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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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실 이 대사 때문에 이 포스팅을 시작한 것이다 [Back]
  2. 둘 다 이름이 엔리카에서 유래했다. 엔리카(여성형)-(엔)리코(남성형 애칭), 엔리카(이탈리아어)-헨리에타(영어) [Back]
  3. 혹은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조건강화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장이라면 조건강화를 강하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Back]
2010/05/07 11:53 2010/05/07 11:53
Tumnaseld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