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2010/02/06 12:31 / 영화
아바타 디지털 3D 보고 왔다.

일단 트위터에 간략하게 쓴 소감을 기억에 의존해서 옮겨적자면

헤일로나 크라이시스와 마찬가지로, 기술 홍보를 위해 만든 영화이지만
내용도 비교적 탄탄했기에 대단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첫 번째 감상이었다.

이 영화의 첫 맛은 기술력이다. 이 영화는 기술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아바타를 보려면 절대 2D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 영화는 2D를 위해 만든 게 아니다.
영화가 가진 3D 기술력- 3D스크린, 3D애니메이션, 모션캡쳐, 3D와 현실의 융합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스토리는 진부하다.
외계인과 인간이 있고, 인간은 영화 배경상 상대적 이방인인데,
그 중 선택받은 한 사람이 외계인과 소통하고 그들에게 받아들여져 영웅이 된다는 것이다.(모로윈드, 듄)
거기에 자연파괴에 대한 경고, 절대적인 파괴력과 전쟁으로 인한 비인간화,
미지에 대한 몰이해와 이해 노력의 부재에 대한 혐오 등의 메시지가 섞여 있다.
뭐 나쁘지 않다. 진부한 것들을 섞어서 잘 짰다.

그런데 뭔가 특이한 점이 보인다.
선택받은 인간은 자기 자신이 아닌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서 외계인과 소통한다.
외계인과 동화된 인간은 자신의 동족을 배신하고 외계인의 편에 서서 동족과 전투를 한다.
그리고 결국은 외계인의 몸으로 옮겨 간다.

인간으로서, 비록 정당한 이유라지만 외계인과 함께 동족을 죽이려 들 수 있는가?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영화는 대령의 입을 통해 그 문제를 스스로 꼬집는다.
"동족을 배신하고 죽인 기분이 어떤가? 자신이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나? 너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인간이야."

이것은 결국 다분히 인간적인 "선택의 문제"다.
그가 원한 건 자신이 사랑하는 새로운 세상의 안전이었지 "죽어버린 지구"와 그 종족의 탐욕이 아니었다.
어떤 의미에서, 영화 초반부터 그는 인간이란 종족에 대해 신경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형은 죽었고 지구는 죽었으며 기업의 탐욕은 외계로 뻗어나가고
그 결과 자신에게 돌아온 건 휠체어 뿐이었기 때문이다.
대령은 협력의 대가로 새로운 다리를 약속했지만 그 시점에서 이미 그에게는 새로운 다리가 필요없었다.
그에게는 새로운 몸과 새로운 세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받아들인 새로운 세상에서 인간을 쫓아내기로 선택한 것이다.

이 영화는 외계와의 충돌을 다루고 있지만 중요한 건 그 사건이 아니다.
중요한 건 인간이길 포기하고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는 사람의 선택에 대한 것이다.
그 사건이야말로 이 영화의 정체성을 지탱하는 강력한 기둥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많은 영화에서 사람들은 동족을 배반하는 선택을 했지만
자기 자신의 정체성은 여전히 인간으로 남겨 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은 결국 자기 자신을 버리고 아바타에 완전히 옮겨간다. 인간이길 그만둔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을 "게임에 중독된 사람"으로 비유하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견해이다.)

한편 무척 중요한 특징이 하나 더 있다.
이 영화에는 외계인과 백인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백인 이외의 민족은 물론 조금씩 보이긴 하지만 주인공급은 아니다. 흑인은 눈씻고 찾아봐도 없다.
외계인을 새로운 인종으로 보고 이 영화를 인종차별에 대한 영화로 판단하자면 이 영화는 근본부터 잘못되었다.
흑인, 황인, 홍인은 어디로 갔는가?

사실 외계인에 대한 묘사도 전형적인 "동양의 야만민족" 혹은 "신대륙의 인디언"이다.
조상숭배와 극단적인 자연숭배, 옷을 거의 걸치지 않고 화려한 화장과 종교적 치장을 하는 나무에 사는 민족.
그리고 그 얼굴의 모습은 어느 정도 흑인을 닮았다. 큰 코와 벌어진 이마.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다시금 인종차별에 대한 영화다.
외계인은 백인 이외의 인종을 한 데 섞고 파란 물감을 칠한, "외계 인종"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세계"의 백인과 "외계"의 유색인종에 대한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과학자"와 "군인"간의 갈등관계도 특징적이다.
무엇보다도 과학자와 군인의 전형적인 모습이 강하게 강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담배를 입에서 떼지 않는 과학자는 죽어가는 순간까지 샘플채취를 생각하고
근육질 대령은 VTOL 콕핏에서 머그잔을 들고 걸쭉한 욕을 내뱉는다.
이러한 강렬한 전형화와 선악의 이분법은 오히려 주인공의 위치를 더욱 모호하게 만들고 사건을 강조한다.
주인공은 군인이었고, 과학자가 아니며, 아바타를 탄 인간이다.
주인공은 중간인이다. 주인공은 아무도 아니다. 주인공은 붕 뜬 존재이다.
그로 인해 주인공의 선택이 개연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결국 내 첫 번째 평가는 틀렸다.

이 영화는 기술적으로 포장되어 있는 만큼 내용도 특질할 만하다.
SF의 전형적인 요소를 마음껏 버무려내었지만 거기에 독창적인 요소를 가미했고
그 둘이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해 냈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단순한 기술 과시용으로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비록 소재가 전형적이라 영화를 보기 전부터 큰 감점을 받고 들어갔지만
독창적인 소재와 전형적인 소재가 이룬 조화는 지금까지 어떤 매체에서도 볼 수 없었던 완벽한 것이었다.

이 영화는 3D가 아니더라도 대단하다.
이 영화는 2D로만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그 존재가치가 있다.



마지막으로 시고니 위버를 다시 봐서 무척 기쁘다.
에일리언으로 다져진 SF에 대한 경험이 이 영화에서 완숙한 연기로 흘러나오고 있다.
그녀의 포스는 범접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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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6 12:31 2010/02/06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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