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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1/23 모래사장에 쌓는 이야기 by Tumnaselda
이야기는 narrative, 모래사장은 sandbox.
게임 시스템 이야기.

오픈월드 게임의 형식은 시작방법 두 가지와 마무리법 세 가지의 조합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시작방법 하나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시작하는 것(딱히 용어가 없으니 내 멋대로 오픈스타트라고 하겠다),
다른 하나는 이미 만들어진 세계에서 시작하는 것(마찬가지로 내 멋대로 조인스타트라고 하겠다).
마무리법 하나는 엔딩을 보고서도 게임을 계속 진행할 수 있는 오픈엔딩(영어로는 open-ended지만),
또 다른 하나는 엔딩과 함께 게임이 끝나는 게임오버,
마지막 하나는 아예 엔딩이 없는 것(이건 용어가 없으니 노엔딩이라고 하겠다).

이를 내가 플레이했던 게임에 적용시켜 보면

폴아웃 3: 조인스타트 게임오버.
GTA 4: 조인스타트 오픈엔딩.
문명 V: 오픈스타트 오픈엔딩.
신즈 오브 어 솔라 엠파이어: 오픈스타트 오픈엔딩.
심시티: 오픈스타트 노엔딩.
심즈: 조인스타트 혹은 오픈스타트 노엔딩.
마인크래프트: 오픈스타트 노엔딩.
헤이븐 앤 허스(온라인): 오픈스타트 노엔딩.
이브 온라인(온라인): 조인스타트 노엔딩.

오픈월드 게임은 샌드박스 게임 스타일과 매우 비슷하고 겹치는 것도 많다.
대충 오픈월드는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세계"이고,
샌드박스는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세계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샌드박스가 오픈월드 게임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즉 샌드박스는 오픈월드지만, 오픈월드는 샌드박스가 아니다, 라고...

위에서 언급한 게임 중 샌드박스류 게임은 다음과 같다.
문명 V: 사실 샌드박스라고 하기는 좀 힘들지만... 규모만 따지자면 슈퍼 매크로
신즈 오브 어 솔라 엠파이어: 문명과 마찬가지로 샌드박스라는 이름을 붙이기 애매한 게임.
심시티: 매크로한 샌드박스... 이지만 게임 중에서는 평균
심즈: 사람의 기준으로 가장 평균적인 샌드박스가 아닐까?
마인크래프트: 매우 마이크로한 샌드박스
헤이븐 앤 허스(온라인): 심즈 규모에서 문명 규모까지
이브 온라인(온라인): 심시티 규모에서 문명 규모까지

샌드박스류는 대부분 오픈스타트 노엔딩 혹은 오픈엔딩이다.
조인스타트인 것은 이브 온라인(온라인)과 심즈밖에 없는데
둘 다 엄밀한 의미에서 조인스타트라고 하기는 무리가 있다.

예를 들어 GTA나 폴아웃 류의 게임은 일단 게이머를 메인퀘스트라는 내러티브 줄거리의 노선에 올려 둔다.
그 노선을 따라갈지 혹은 탈선할지는 온전히 게이머의 몫이다.
그런데 이브 온라인(온라인)이나 심즈는 그런 메인퀘스트 내러티브가 없다.
이브 온라인의 미션 내러티브는 사실 설덕1들 외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고,
심즈는 마을과 마을 주민들이 이미 구성되어 있다는 걸 제외하면 조인스타트라고 볼 수 없다.2

문명이나 신즈 오브 어 솔라 엠파이어는 아주 특이한 경우인데
여러 개의 팩션이 있고 주어진 세계가 있고 플레이어들이 존재하는데 정작 그 안에 내러티브가 부재한다.
내러티브가 없다는 것으로 보면 샌드박스지만, 게임 유형은 RTS 혹은 턴제 전략이고,
게이머가 개입할 수 있는 규모는 매우 매크로한 규모에 불과하다(불과라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그러니 이 둘은 아예 다른 게임 스타일로 보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 여기까지 간단히 머릿속의 잡상 정리 =====


오픈스타트의 문제는 메인내러티브가 아예 없다는 것이다.
메인내러티브의 부재는 게이머의 몰입을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몰입할 거리가 없다.

이러한 내러티브의 부재를 메꾸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게이머가 직접 만드는 내러티브이다.
즉 게이머가 게임 세계에 개입하게 되면서 게임 세계만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게이머의 경험도 변한다는 것이다.
게이머가 직접 내러티브를 만들어나가면서 무에서 시작한 세계는 수많은 내러티브를 지니게 된다.

문명의 예.
A라는 작은 도시에서 시작해서 거대한 왕국을 건설하고, 다른 지도자들과 애증의 관계를 쌓고,
영웅적인 승리와 치욕적인 패배를 겪고...
이 과정에서 처음에는 단지 타일 부가물에 불과했던 도시에 의미가 생기기 시작한다.
수십 차례에 걸친 외적의 침입에서 승리한 제국의 방패 도시,
변방의 시골 도시에서 시작했으나 수많은 위인을 낳은 위대한 도시,
제국의 부 전체의 일할을 생산해내는 금빛으로 빛나는 상업 도시,
수많은 건물이 들어서고 하루가 다르게 스카이라인이 변하는 공업 도시,
셀 수없이 많은 아군의 시체를 쌓게 했던 어떤 도시,
내륙에서 시작한 제국에게 바다의 맛을 보게 한 최초의 해안 도시...
도시와 길, 산과 언덕에 의미가 부여되면서 플레이어는 자신의 제국에 애착을 갖게 되고
게임에서 승리하는 것이 단순히 승리조건을 충족시키는 기계적인 것이 아닌
자신의 제국 내러티브에 찬란한 금빛 왕관을 씌우는 어떤 기념비적인 것으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매 게임마다 반복된다.

신즈 오브 어 솔라 엠파이어는 문명과 비슷하다.
다만 이 경우에는 게임 진행이 너무 긴박해서 사소한 내러티브 따위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게 문제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실제로 이 때문에 오랫동안 게임에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나중에 잠자리에 들어서 곰곰히 씹어보면 재미있지만 정작 게임을 플레이할 때는 머리가 터져나갈 것 같거든(...)

심시티나 심즈는 플레이한지도 오래되었고 많이 알려진 게임이니만큼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심시티는 도시의 확장에 내러티브가 끼게 되고 심즈는 심의 생활 자체가 하나의 내러티브를 구성하게 된다.
특히 심즈 플레이 기록을 보면 대부분이 플레이어가 경험한 내러티브에 관한 것이다.
다른 게임이 어떤 승리 조건을 충족하는 과정에서 내러티브를 쌓게 된다면
심즈는 내러티브를 쌓는 것 자체가 게임의 주 목적이 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마인크래프트의 예.
처음에는 모래사장 숲 언덕 산 동굴... 그냥 지형일 뿐이다.
플레이어가 집을 짓는 순간 그 곳은 고향이 된다.
플레이어가 광산을 파는 순간 그 곳은 일터가 된다.
플레이어가 동굴을 탐험하는 순간 그 곳은 모험의 배경이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또 하나의 내러티브가 쌓인다.
물론 가상의 레고처럼 게임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여기에는 내러티브가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이지만.

헤이븐 앤 허스(온라인).
온라인 게임에서 오픈스타트라니!
NPC도 없고 당연히 퀘스트나 배경세계도 없다.
맨 처음 생성된 세계에 맨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게이머가 볼 수 있는 것은 무성히 우거진 숲, 산, 강, 초원...
어떤 하나의 처녀림이다.
그곳에 사람들이 모이고, 집을 짓고, 마을을 형성하고, 다른 마을과 교역하거나, 혹은 다른 마을을 공격하거나...
온라인 게임에서 쌓이는 내러티브는 오프라인 게임에서 직접 쌓는 내러티브보다
플레이어가 컨트롤할 여지가 적지만 그만큼 더 각별하고 드라마틱하다.

이러한 상호작용이 좀 더 세련되고 좀 더 깔끔하게 구현된 것이 이브 온라인(온라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브 온라인은 4개의 제국이라는 안전지역과 기본적인 NPC, 아이템 마켓을 제공한다.
이러한 세계는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갖고 있으니 이를 오픈스타트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광활한 우주의 외곽, 아우터는 그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는 처녀 우주이고
플레이어들은 그곳을 개척해서 자신만의 제국을 세울 수 있다.
바로 이 아우터가 이브 온라인이 칭송받는 이유이다.
이 곳에서 이브 온라인의 모든 영웅적 대 서사시가 만들어지고
게임 내의 경제 시스템 역시 아우터에서 벌어지는 전투들이 없다면 사실상 존립할 수 없다.
간단한 이야기를 해 볼까?(다만 이건 내가 직접 겪은 건 아니다. 난 케어베어!-_-;;;;;)
BoB라는 위엄넘치는 회사가 있었다. 이 회사는 사실상 말 그대로 우주를 정복한 상태였다.
그 어떤 마이너 팩션도 BoB에 대항할 힘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마이너 팩션이 전부 연합해서 BoB를 친다?
말은 번드르르하나 이것이 실제로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다. 게다가 일어날 이유도 없었다.
그러한 BoB가 어느 날 아침 말 그대로 공중분해한다. 단 한 명 때문에.
그는 BoB에서 오랫동안 플레이했으며 수많은 플레이어들의 믿음을 받아 왔다.
그는 그 믿음을 딛고 회사의 간부로 취임했다.
그는 회사 재산을 우주에 뿌리고 주식을 처분하고 회사의 모든 문서를 불태운 후 다른 회사로 도피했다.
BoB의 멤버들은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지만, 얼마 안 가 분해되고 만다.
그렇게 BoB는 이브의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이러한 내러티브의 생성은 샌드박스 혹은 준 샌드박스 게임의 장점을 여실히 보여주지만 그 한계 또한 보여준다.
게임에서 쌓인 내러티브는 그 세계에 참여한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게임의 내러티브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에 의해서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샌드박스 오픈월드 게임의 문제는 이러한 내러티브가 각각의 플레이어에게 다르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의 경우에는 그나마 낫다. 생성된 내러티브를 게이머들이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프라인 플레이를 통해 형성된 내러티브는 게이머 고유의 것이기에
다른 게이머에게 쉽게 전달될 수 없는 배타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며,
이는 게임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데 있어서 한계를 가져온다.
말하자면 당신이 거대한 이슬람 문명을 건설하고 독일과 미국 영국을 발 밑에 두었으며
위대한 이집트 문명과 함께 세계를 양분했다고 해서 그걸 듣고 흥미로워할 사람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3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방법을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샌드박스 혹은 준 샌드박스 온라인 게임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했다고 볼 수 있지만
오프라인 게임에서는 한계를 뛰어넘을 방법을 찾기 힘들다.

음... 그냥 그 이야기를 써 두고 싶었다.





세 줄 요약
- 샌드박스 게임은 다른 사람과 경험을 공유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 샌드박스 게임 중 온라인 게임의 경우 그러한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 오프라인 샌드박스 게임은 어떻게 하면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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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설정덕후. 소프트SF 팬이라면 이브 온라인의 내러티브가 재미있을 것 같다. 하드코어SF 팬들은 오히려 별로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Back]
  2. 그나마도 마음대로 지우거나 변형할 수 있다. [Back]
  3. 이 점에서 볼 때 작년 말의 패왕 간디 열풍은 무척 특이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는 모든 플레이어가 간디에게 침공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Back]
2011/01/23 21:45 2011/01/23 21:45
Tumnaseld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