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보셔도 됩니다.
일기
왠만하면 보지 마세요. 정신건강에 해로울 수 있습니다.
[트위터에서 쓴 글]
짜증나! 화나! 절망스러워! 끔찍한 기분이다. 봄은 잠깐 그 얼굴을 내비쳤다가 여름에게 자리를 내주었는데, 왜 내 맘은 아직도 봄인 것일까. 그리고 봄은 언제나 내게 끔찍한 계절이었다. 모든 걸 잊고 모든 걸 무시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만서도.
나의 끝없는 의심, 시기, 질투, 탐욕, 욕망, 욕망, 욕망... 그리고 그게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순간의 절망감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어. 이유는 알고 있지만 해결할 방법이 없어. 그래서 오늘도 난 방에서 스무 시간을 보냈지.
날 무력하게 만드는 장마철, 날 녹초로 만드는 한여름, 이것들은 날 피곤하게 할망정 날 고통스럽게 하지는 않아. 날 무감각하게 만드는 겨울은 나의 의심을 불살라 날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하지만 봄은- 봄은 내게 희망을 주고 다시 그것을 빼앗아 간다.
난 봄이 없는 고장으로 가야 하네. 희망이 없는 숲, 햇빛이 들지 않는 골짜기로 가야 하네. 그곳은 날 따뜻하게 반겨주겠지. 어서 와. 여기가 네가 있을 곳이야. 넌 더 이상 절망할 필요가 없어. 이 곳이 바로 절망이니까.
하지만 내 마음속에 있는 헛된 봄은 아직도 내게 일어서라고, 다시 가야만 한다고 부추긴다. 뛰지 못한다면 걸어서라도, 걷지 못한다면 기어서라도 가야 한다고 외친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이미 원하는 것을 잃은 내게 목적지는 공허 뿐.
[블로그에 쓰는 글]
불신.
불신사회, 인간불신.
나는 불신한다. 나는 의심한다. 그것이 나를 존재하게 한다. 나의 아이덴티티.
나는 아무도 믿지 못해. 나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어. 나의 망상은 높은 벽을 넘어 끝없이 질주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할 거야. 그녀는 이렇게 행동하고 있겠지. 다들 나를 비웃고 있어. 나를 우습게 보고 있어. 나를 무시하고 있어. 나를 싫어해. 나를 증오해.
그러니 나는 쓰레기. 나는 인간 쓰레기다. 그건 타는 쓰레기야. 그러니까 날 태워줘. 날 죽여줘.
하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도 가끔은 느낀다. 가끔씩. 가끔씩!
날 믿는 사람이 적지만 존재한다는 놀라운 사실과, 날 사랑하는 사람이 적어도 두 명은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것만이 날 지탱해주는 생명선이니 이는 참으로 아슬아슬한 것이다.
의심은 분노로 바뀌고 분노는 증오로 바뀌었다가 증오는 자기혐오로 이어진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렇다고 하면 어쩔건데.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야. 너와는 상관 없어. 다른 것. 다른 사람. 다른 세계의 이야기잖아.
자기혐오와 분노는 서로를 도와서 나를 한층 더 높은 정신적 단계로 인도한다. Temper! Berserk! 다혈질! 급작스러운 감정의 변화. 마치 촉매반응과 같은 발작스러운 전이.
나는 나를 혐오하고 남을 혐오하고 세상을 혐오하고 그리고 아무것도 원하지 못한다. 꿈을 가져라! 야망을 가져라! 어떤 세상에서? 혐오스러운 세상에서? 혐오스러운 나를 위해? 혐오스러운 남과 함께?
하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 이 나에게 하나의 빛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건 내가 손댈 수 없어. 궁극적인 파멸의 길로 걸어갈 수는 없다. 나는 적어도 내 의지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은 아니다.
수십 번 자살을 생각하고 수십 번 살인을 생각하고 수백 번 더한 것을 생각해 왔지만 그것은 망상에 불과하다. 그것만이 나의 응고된 증오를 배출할 수 있는 길이다. 죽어라. 죽여라. 수백 번도 더 죽고 수천 번도 더 죽여가면서 나의 증오를 풀어 왔다. 아무도 죽지 않는 방법이다.
더 성숙한 방법이 있을까? 운동을 하고 게임을 하라고? 네가 좋아하는 활동을 하면 이 증오가 풀어질 거라고? 그렇지 않아요. 내가 이 세상에 물리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이 증오를 합법적으로 풀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아요. 꿈 깨세요. 너나 잘하세요.
2006년부터 블로그에 글을 써 오면서 나는 하나의 패턴을 발견했다. 봄이다. 봄이 오면 나는 발광한다. 가을이다. 가을에도 나는 발광한다. 하지만 봄이 더 심하다. 지금은 5월이다. 시험기간이야. 그리고 나는 발광한다. 시험성적이 잘 나올 리가 없다. 나는 공부하다가도 의심하고 증오하고 혐오한다. 나는 잠자다가도 분노한다. 나는 걸어가다가 죽이고 버스를 타다가 죽고 밥을 먹다가 죽이고 술을 마시다가 죽는다.
이런 불안정한 정신상태로 어떻게 군대까지 갔다 왔는가? 어떻게 사회생활을 할 생각이지? 어쩔 생각이야? 넌 살아갈 수 없어. 넌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어.
아니 그렇지 않아. 나만 이런 게 아닐거야. 전부 미쳐있는 걸 거야. 다들 십자가 하나쯤은 지고 있잖아? 다들 머리에 구속구를 차고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고통에 몸부림치고 밤마다 악몽을 꾸고 깨어나면 땀으로 흠뻑 젖어 있는 거잖아?
그렇지 않다면, 난 어디로 가야 하지?
그렇다고 나 자신을 바꿀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이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도 가끔씩 행복함을 맛볼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 행복감은 단언컨대 나를 바꾼 후에는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지금의 나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 행복감이 나를 충만케 한다. 나를 살아가게 한다.
하지만 두 시간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서 분노로 몸을 떨고 머릿속으로 발광하고 나면 앞으로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 지금 그랬다.
내가 인간선언을 하기 위해 방을 치우고 옷을 새로 맞추고 가구를 들이고 밖으로 나가 사람을 만나고 트위터와 미투데이와 페이스북과 싸이월드에 들어가 보고 핸드폰으로 문자를 하는 것은 나를 살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너무나도 고통스럽다. 이 고통은 앞으로 심해질 것이다. 그걸 알기 때문에 두렵다. 그리고 그것이 나 자신을 바꾸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두려움이 힘이다.
하지만 내 겉모습이 바뀐다고 해서 이미 고정된 인식은 바뀌지 않고 나의 행동양식과 사고방식도 고쳐지기는 힘들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이렇게 죽어가야 하나? 나는 이렇게 말라 비틀어지고 스스로의 고뇌에 미쳐 헛소리와 발작을 번갈아가며 눈을 뒤집고 거품을 물고 그렇게 죽어가야 하나? 나는 이렇게 몰락해야 하나?
짜증나! 화나! 절망스러워! 끔찍한 기분이다. 봄은 잠깐 그 얼굴을 내비쳤다가 여름에게 자리를 내주었는데, 왜 내 맘은 아직도 봄인 것일까. 그리고 봄은 언제나 내게 끔찍한 계절이었다. 모든 걸 잊고 모든 걸 무시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만서도.
나의 끝없는 의심, 시기, 질투, 탐욕, 욕망, 욕망, 욕망... 그리고 그게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순간의 절망감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어. 이유는 알고 있지만 해결할 방법이 없어. 그래서 오늘도 난 방에서 스무 시간을 보냈지.
날 무력하게 만드는 장마철, 날 녹초로 만드는 한여름, 이것들은 날 피곤하게 할망정 날 고통스럽게 하지는 않아. 날 무감각하게 만드는 겨울은 나의 의심을 불살라 날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하지만 봄은- 봄은 내게 희망을 주고 다시 그것을 빼앗아 간다.
난 봄이 없는 고장으로 가야 하네. 희망이 없는 숲, 햇빛이 들지 않는 골짜기로 가야 하네. 그곳은 날 따뜻하게 반겨주겠지. 어서 와. 여기가 네가 있을 곳이야. 넌 더 이상 절망할 필요가 없어. 이 곳이 바로 절망이니까.
하지만 내 마음속에 있는 헛된 봄은 아직도 내게 일어서라고, 다시 가야만 한다고 부추긴다. 뛰지 못한다면 걸어서라도, 걷지 못한다면 기어서라도 가야 한다고 외친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이미 원하는 것을 잃은 내게 목적지는 공허 뿐.
[블로그에 쓰는 글]
불신.
불신사회, 인간불신.
나는 불신한다. 나는 의심한다. 그것이 나를 존재하게 한다. 나의 아이덴티티.
나는 아무도 믿지 못해. 나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어. 나의 망상은 높은 벽을 넘어 끝없이 질주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할 거야. 그녀는 이렇게 행동하고 있겠지. 다들 나를 비웃고 있어. 나를 우습게 보고 있어. 나를 무시하고 있어. 나를 싫어해. 나를 증오해.
그러니 나는 쓰레기. 나는 인간 쓰레기다. 그건 타는 쓰레기야. 그러니까 날 태워줘. 날 죽여줘.
하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도 가끔은 느낀다. 가끔씩. 가끔씩!
날 믿는 사람이 적지만 존재한다는 놀라운 사실과, 날 사랑하는 사람이 적어도 두 명은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것만이 날 지탱해주는 생명선이니 이는 참으로 아슬아슬한 것이다.
의심은 분노로 바뀌고 분노는 증오로 바뀌었다가 증오는 자기혐오로 이어진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렇다고 하면 어쩔건데.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야. 너와는 상관 없어. 다른 것. 다른 사람. 다른 세계의 이야기잖아.
자기혐오와 분노는 서로를 도와서 나를 한층 더 높은 정신적 단계로 인도한다. Temper! Berserk! 다혈질! 급작스러운 감정의 변화. 마치 촉매반응과 같은 발작스러운 전이.
나는 나를 혐오하고 남을 혐오하고 세상을 혐오하고 그리고 아무것도 원하지 못한다. 꿈을 가져라! 야망을 가져라! 어떤 세상에서? 혐오스러운 세상에서? 혐오스러운 나를 위해? 혐오스러운 남과 함께?
하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 이 나에게 하나의 빛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건 내가 손댈 수 없어. 궁극적인 파멸의 길로 걸어갈 수는 없다. 나는 적어도 내 의지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은 아니다.
수십 번 자살을 생각하고 수십 번 살인을 생각하고 수백 번 더한 것을 생각해 왔지만 그것은 망상에 불과하다. 그것만이 나의 응고된 증오를 배출할 수 있는 길이다. 죽어라. 죽여라. 수백 번도 더 죽고 수천 번도 더 죽여가면서 나의 증오를 풀어 왔다. 아무도 죽지 않는 방법이다.
더 성숙한 방법이 있을까? 운동을 하고 게임을 하라고? 네가 좋아하는 활동을 하면 이 증오가 풀어질 거라고? 그렇지 않아요. 내가 이 세상에 물리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이 증오를 합법적으로 풀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아요. 꿈 깨세요. 너나 잘하세요.
2006년부터 블로그에 글을 써 오면서 나는 하나의 패턴을 발견했다. 봄이다. 봄이 오면 나는 발광한다. 가을이다. 가을에도 나는 발광한다. 하지만 봄이 더 심하다. 지금은 5월이다. 시험기간이야. 그리고 나는 발광한다. 시험성적이 잘 나올 리가 없다. 나는 공부하다가도 의심하고 증오하고 혐오한다. 나는 잠자다가도 분노한다. 나는 걸어가다가 죽이고 버스를 타다가 죽고 밥을 먹다가 죽이고 술을 마시다가 죽는다.
이런 불안정한 정신상태로 어떻게 군대까지 갔다 왔는가? 어떻게 사회생활을 할 생각이지? 어쩔 생각이야? 넌 살아갈 수 없어. 넌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어.
아니 그렇지 않아. 나만 이런 게 아닐거야. 전부 미쳐있는 걸 거야. 다들 십자가 하나쯤은 지고 있잖아? 다들 머리에 구속구를 차고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고통에 몸부림치고 밤마다 악몽을 꾸고 깨어나면 땀으로 흠뻑 젖어 있는 거잖아?
그렇지 않다면, 난 어디로 가야 하지?
그렇다고 나 자신을 바꿀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이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도 가끔씩 행복함을 맛볼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 행복감은 단언컨대 나를 바꾼 후에는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지금의 나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 행복감이 나를 충만케 한다. 나를 살아가게 한다.
하지만 두 시간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서 분노로 몸을 떨고 머릿속으로 발광하고 나면 앞으로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 지금 그랬다.
내가 인간선언을 하기 위해 방을 치우고 옷을 새로 맞추고 가구를 들이고 밖으로 나가 사람을 만나고 트위터와 미투데이와 페이스북과 싸이월드에 들어가 보고 핸드폰으로 문자를 하는 것은 나를 살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너무나도 고통스럽다. 이 고통은 앞으로 심해질 것이다. 그걸 알기 때문에 두렵다. 그리고 그것이 나 자신을 바꾸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두려움이 힘이다.
하지만 내 겉모습이 바뀐다고 해서 이미 고정된 인식은 바뀌지 않고 나의 행동양식과 사고방식도 고쳐지기는 힘들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이렇게 죽어가야 하나? 나는 이렇게 말라 비틀어지고 스스로의 고뇌에 미쳐 헛소리와 발작을 번갈아가며 눈을 뒤집고 거품을 물고 그렇게 죽어가야 하나? 나는 이렇게 몰락해야 하나?
2010/05/12 20:50
2010/05/12 20:50
Tumnaseld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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