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단순히 의미만 전달해야 하는 거라면 정말 쉽게 할 수 있다.
근데 이 소설에는 구구절절이 장식이 치렁치렁 달려 있는데,
그걸 번역하자니 인터넷 사전 사이트 회선에 불이 나도록 검색을 돌려야 된다.
게다가 좀 쉴 만하다 싶으면 문장을 꼬아 놓는다. 이게 먼 개소리야?
2장 번역할 때까지 업로드 안하기로 한 게 참 다행이다.
그렇다고 1장 번역해놓은 걸 버리기도 아까워서 그냥 올려 본다.
역시 그냥 읽는 것과 번역하는 건 하늘땅별땅 차이다.
번역가분들 존경함다. 굽굽신 굽신
Carmilla
CARMILLA
J. Sheridan LeFanu
1872
프롤로그
Upon a paper attached to the Narrative which follows, Doctor Hesselius has written a rather elaborate note, which he accompanies with a reference to his Essay on the strange subject which the MS. illuminates.
This mysterious subject he treats, in that Essay, with his usual learning and acumen, and with remarkable directness and condensation. It will form but one volume of the series of that extraordinary man's collected papers.
As I publish the case, in this volume, simply to interest the "laity," I shall forestall the intelligent lady, who relates it, in nothing; and after due consideration, I have determined, therefore, to abstain from
presenting any pr?cis of the learned Doctor's reasoning, or extract from his statement on a subject which he describes as "involving, not improbably, some of the profoundest arcana of our dual existence, and its intermediates."
I was anxious on discovering this paper, to reopen the correspondence commenced by Doctor Hesselius, so many years before, with a person so clever and careful as his informant seems to have been. Much to my regret, however, I found that she had died in the interval.
She, probably, could have added little to the Narrative which she communicates in the following pages, with, so far as I can pronounce, such conscientious particularity.
I
첫 번째 공포
스티리아(Styria)*에서, 우리는 별반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 즉 슐로스(Schloss)*에서 살았다. 그 당시에는 약간의 수입이라도 큰 도움이 되었기에, 일 년에 팔백에서 구백닢을 받는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우리가 고향 땅의 부자들만큼 돈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영국인이었고 내 이름 역시 영국식이었지만, 나는 영국을 본 적은 없다. 그러나 내가 살던 곳은 외롭고 구식이며 모든 것이 놀라울 정도로 쌌기 때문에, 우리에게 돈이 더 있었더라도 물질적으로 더 풍족하거나 심지어는 사치스럽게 사는 데 별반 도움이 되지는 못했을 것 같다.
내 아버지는 오스트리아 군에서 복무했고, 퇴직한 후 연금을 받았으며 유산도 있었기에, 이 봉건시대의 거주지와 그 주변의 영지를 싼 값에 구매했다.
참으로 고독하면서도 그림같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성은 숲 속의 나지막한 언덕 위에 서 있었다. 내가 살던 동안은 단 한 번도 닫힌 적이 없는 도개교 앞으로 아주 오래된 좁은 길이 나 있었고, 농어가 헤엄치는 해자에는 백조가 여럿 떠 있었으며 새하얀 수련꽃이 무리지어 넘실거렸다.
성벽 안에는 수많은 창문이 난 슐로스가 서 있었고, 탑과 고딕 양식의 교회도 있었다.
문 앞에는 숲이 만들어 낸 기묘하면서도 아주 그림같은 공터가 있었고, 길은 오른쪽에 있는 가파른 고딕 양식의 다리를 통해 숲의 그림자 속 깊숙한 곳으로 구불구불 이어졌다. 나는 이 곳이 아주 외로운 곳이라고 했는데, 한 번 확인해 보자. 홀의 문에서 숲 길을 향해 섰을 때, 성이 서 있는 숲은 오른쪽으로 15마일, 왼쪽으로 12마일 정도 펼쳐져 있었다. 사람이 사는 가장 가까운 마을은 왼쪽으로 7마일정도 떨어져 있었다. 사람이 사는 슐로스 중 중요하기도 하며 가장 가깝기도 한 곳은 스피엘스도프 (Spielsdorf) 장군의 거처로, 오른쪽으로 20마일은 족히 가야 했다.
나는 “사람이 사는 가장 가까운 마을”이라고 했는데, 왜냐하면 서쪽, 즉 스피엘스도프 장군의 슐로스 방향으로 3마일밖에 안 되는 곳에 폐허가 된 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곳에는 지붕이 날아가 버린, 아주 오래된 작은 교회가 이제는 멸문해버린 오만한 카른슈타인(Karnstein) 가문의 이끼 낀 비석들의 행렬 가운데 서 있었다. 그들의 장원은 깊은 숲 속에서, 이제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 마을의 폐허가 내려다보이는 장소에 버려져 있었다.
이 인상적이고 음울한 장소가 버려진 이유에 대한 전설은 다음 기회에 이야기 해 주리라.
이제 나는 우리 성에 얼마나 적은 사람들이 사는지 말해 주고자 한다. 슐로스에 붙어 있는 별채에 기거하는 하인들이나 그 가족은 포함하지 않았다. 놀랄 준비를 하시라! 세상에서 가장 자상한, 그러나 세월의 흐름에 떠밀려가는 나의 아버지가 있었다. 이야기가 진행될 당시 나는 겨우 열아홉 살이었다. 그때로부터 팔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슐로스에 있는 가족은 나와 아버지뿐이었다. 내가 유아였을 때 죽은 나의 어머니는 스티리아의 귀부인이었다. 대신 내게는 심성이 고운 가정교사가 있었는데, 내가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나와 함께 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녀의 통통하고 선량한 얼굴은 내게 항상 친숙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가정교사인 뻬로동(Perrodon) 부인은 베른(Berne) 태생인데, 그녀의 보살핌과 선량한 기질이 너무나도 일찍 어머니를 잃어 기억조차 없던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녀는 우리의 작은 저녁 파티에서 세 번째 자리에 앉았다. 네 번째로 앉는 사람은 라뽕뗑(LaFontaine)의 귀공녀였는데 보통 “마무리 가정교사”라고 불리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했고, 뻬로동 부인은 프랑스어를 했으며 조금 이상한 영어도 했다. 그리고 아버지와 나는 영어를 했는데, 그 말을 잊지 않기 위한 것이기도 했고, 약간은 애국적인 동기에서 비롯되기도 한 것으로, 우리는 매일 대화를 나누었다. 결국 말들은 뒤죽박죽이 되어 다른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었고, 나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그 장면을 재현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 나이 또래의 아가씨 친구들이 두세 명 정도 함께 했는데, 그녀들은 짧은 기간이나 긴 기간동안 자주 놀러왔고, 나도 그녀들을 때때로 방문했다.
우리는 주로 이런 사람들과 알고 지냈다. 물론 5~6리그 떨어진 곳에 사는 “이웃”사람들이 올 때도 가끔 있었다. 그렇지만 내 삶은 외로웠던 편에 가깝다고 나는 확언할 수 있다.
예상할 수도 있겠지만 내 가정교사들은 내게 매우 엄격했는데, 현명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고자 하는 걸 거의 모두 허락해 주는 부모를 둔 버릇없는 여자아이를 그렇게 다룰 것이다.
내 생애 첫 번째 사건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렸을 적에 일어난 것인데, 내 마음에 정말 큰 충격을 주었고 사실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너무 사소한 것이라 기록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째서 이 이야기를 했는지는 차차 알게 될 것이다. 성의 윗층에 있는, 가파른 떡갈나무 지붕이 있는 큰 방은 보육원이라고 불리웠는데, 그 보육원의 원아라고는 나 하나뿐이었다. 내가 채 여섯 살이 되지 않았던 어느 밤 나는 잠에서 깨어 침대 위에서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유모 하녀를 찾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유모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버려졌다고 생각했다. 무섭지는 않았는데, 왜냐하면 나는 유령이나 요정, 그리고 문이 갑작스레 삐걱거릴 때나 꺼져가는 촛불의 깜박임이 만들어낸 침대기둥의 그림자가 벽에서 춤추며 얼굴 가까이로 다가올 때 우리 머릿속을 채우는 수많은 이야기들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 행복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무시당했다고 생각했고, 모욕감을 느끼자 화가 나서 마구 소리지를 심산으로 훌쩍이며 울기 시작했는데, 그 때 차갑지만 아주 아름다운 얼굴이 침대가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무릎을 꿇고 손을 침대보 밑에 둔 젊은 아가씨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살짝 놀랐지만 기분이 좋아져 울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부드럽게 내 손을 도닥여 주었고, 침대 위에 올라와 내 옆에 누워 나를 그녀 쪽으로 끌어당기면서 미소지었다. 나는 순식간에 놀라울 정도로 마음이 편안해졌고 잠이 들었다. 마치 두 개의 바늘이 동시에 내 가슴에 깊숙히 박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나는 깨어나서 크게 비명을 질렀다. 그 아가씨는 내게 눈을 고정시킨 채로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고,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는데 내 생각에는 침대 밑에 몸을 숨긴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공포에 질려, 내가 낼 수 있는 한 가장 크게 소리를 질렀다. 유모, 유모 하녀, 집사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뛰어올라왔고, 내 이야기를 들은 후 나를 안심시키면서 그 이야기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려고 애썼다. 그러나 어린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의 얼굴이 평상시와는 달리 두려움으로 창백하게 질려 있음을 느꼈다. 그들은 침대 밑을 살펴보고, 방을 둘러보며 테이블 밑을 노려보거나 찬장을 열어젖혔다. 나는 집사가 유모에게 “침대 밑에 손을 넣어 보게, 뭔가가 정말 거기 누워 있었어. 믿을 수 없지만, 아직도 그 자리가 따뜻하단 말야.”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유모 하녀가 나를 얼러 주었고, 세 명은 내가 구멍이 난 것 같다고 말한 가슴을 조사하고 나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 같은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집사와, 보육원을 담당하는 두 하인은 밤을 꼬박 새웠다. 그리고 그 때부터 내가 열네 살이 될 때까지 하인 한 명이 언제나 보육원 앞에서 밤을 샜다.
나는 이 사건 이후로 오랫동안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창백하고 늙은 의사가 불려 왔다. 그의 길고 음울한, 천연두 때문에 이곳저곳이 패인 얼굴, 그리고 밤나무로 된 의족은 아직도 기억 깊숙히 남아 있다. 아주 오랫동안, 이틀에 한 번씩 그가 와서 내게 약을 주었는데, 물론 나는 그 약이 아주 싫었다.
이 사건 다음날 아침에 나는 완전히 공포에 휩싸여서, 대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이라도 혼자 남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내 아버지가 올라와 침대맡에 앉아 활기차게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는 유모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고, 어떤 대답에는 호탕하게 웃기도 했다. 그는 내 어깨를 두드리고 뽀뽀를 해 주면서, 내가 겪은 일은 꿈일 뿐이고 나를 해칠 수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안심할 수 없었는데, 왜냐하면 그 이상한 여자가 나타난 것이 꿈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끔찍하게 겁에 질려 있었다.
유모 하녀는 내가 본, 침대 옆에 누웠던 그 여자가 바로 자기라고 말했고, 자기 얼굴을 못 알아본 걸로 봐서는 틀림없이 반쯤 꿈을 꾸고 있었을 거라고 했다. 유모도 그 말이 맞다고 했고 나도 약간 마음이 풀렸지만,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이런 일련의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늙고 점잖은, 검은 신부복을 입은 남자가 유모, 집사와 함께 들어와 그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내게 아주 친절하게 말을 건넨 것이 기억난다. 그의 얼굴은 아주 멋지고 부드러웠는데, 그는 기도를 하자며 내 손을 잡고, 기도가 끝나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님은 우리의 선한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라고 말해 달라고 부드럽게 부탁했다. 내 생각에는 이 말이 아주 좋은 것 같은데, 왜냐하면 나는 자주 그 말을 되새겼고 내 유모는 몇 년 동안이나 기도할 때면 내게 이 말을 하도록 시키곤 했기 때문이다.
그 사려깊고 멋진 얼굴을 한 백발의 노신사가 검은 신부복을 입은 채 어지럽고 천장이 높은, 자기보다 삼백 년은 더 오래 된 형편없는 가구가 들어선 갈색 방에 서 있고, 네모난 창문으로 흐릿한 빛이 들어와 어두운 분위기의 방 안에 비추이던 것이 기억난다. 그와 세 명의 여자가 함께 무릎을 꿇었고, 그는 열정으로 떨리는 큰 목소리로 내 생각엔 꽤 오랫동안 기도를 드렸다. 나에게는 그 사건 이전의 기억이 하나도 없고, 그 사건 이후도 흐릿한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내가 설명한 이 장면들은 어둠에 휩싸인 외로운 환상처럼 생생하다.
ps. 심지어는 프롤로그 번역이 안 된다orz
뭐 아예 손을 못 대는 건 아니지만 하다 끊는 건 못하느니만 못하다는 거...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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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2009/02/23 05:52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와 정말 신기하네요 저도 이거 번역해서 블로그에 올리고 있었는데!! 카밀라 검색하다가 한번 들어와봤더니 이런게... 근데 제가 번역한거랑 좀 달라서 신기하기도 하고 그렇네요
Tumnaselda 2009/02/23 13:01 편집/삭제 댓글 주소
오... 카밀라 번역을 하고 있으시군요! 존경스럽습니다. 전 거의 포기한 상태거든요... 한 번 구경해 보고 싶은데 블로그를 찾을 수가 없네요. 여튼 건승하십시오.